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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천역사관

氣天人은 민족의 얼을 지키기 위하여 生과 死를 초월하라.
氣天人이 되려면 개인적인 사소한 감정에 功을 남용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大義를 위한, 天下를 위한 것이라면 능히 공부할 만 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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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혜상인 이전


  기천이 언제 어디서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전해지는 것이 없다. 본디 이름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기천이라 했다는 대양진인의 말씀에 따르면 기천이란 이름도 그 유래를 알 수 없다. 실체가 분명한 것이 이름이 있고 없고가 무엇이 중요하라마는 오늘날에는 실체 없이 이름만으로 행세하기도 하고 외래가 토종으로 둔갑하기도 하는 터여서 안타까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름이 있고 없고는 실체를 분별해내고 알아보는 일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수천 년 동안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온 든든한 실체가 있는데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우리는 기천의 몸짓과 그것이 품고 있는 또한 이루어내는 도에 더욱 감탄하고 젖어들 뿐이다.

  기천이 언제 시작되었는진를 가늠해 볼만한 자료로는 ‘천선녀 이야기’와 '연개소문 이야기‘ 그리고 「흐름의 역사」라는 대양진인의 글에 나오는 ’개천 성조‘와 ’대국가적 혈맥‘이라는 구절 등이 있다. ’천선녀 이야기‘는 달마 조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시대가 고구려 전성기 6세기 전후(단기 29세기)라고 짐작할 수 있으며 ’연개소문 이야기‘는 7세기 때 일이다(단기 30세기), 개천 성조는 초대 단군의 이름인데 이때부터 수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면 기천은 적어도 4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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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대국가적 혈맥(大國家的 血脈)’이라는 대양진인의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국가’라는 말이 우리 민족국가 역사상 전 민족과 영토를 사실상 통일한 국가를 의미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역사상 고조선, 고구려, 발해만이 이범주에 해당한다. 

  발해는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분명히 내외에 공표했고, 고구려도 고조선의 후예를 자임했다. 발해 이후에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했지만, 영토, 백성, 국력 등으로 보아 실질적으로 계승했다고 보기 어렵고, 조선은 고조선의 후예를 자임했지만 역시 인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대한제국은 식민지로 전략하기 직전이므로 결국 ‘대국가적 혈맥’이란 말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혈맥을 잇는다는 말이 된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는 역사상 우리 민족이 최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국가들이고 만주대륙을 호령하는 기마민족으로서 호탕하고 진취적이고 상무적인 특성이 만연했던 전형적인 대국가들이었다. 기천무(氣天武)에 ‘대국가적 혈맥’이 포함되어 있다는 진인의 말씀은 기천무가 바로 고구려나 발해와 같은 기마민족의 대국가적 생명력을 면면히 계승하고 있음을 뜻한다 하겠다. 고구려 안악 3호 고분의 벽화나 집안의 광개토대왕비, 동모산 주변의 발해 유적 등이 ‘죽어서 고형화된 혈맥’이라면 기천 수련은 살아 숨쉬면서 민족의 숨결을 지키고 이어가는 ‘살아 있는 혈맥’으로서 생명력 그 자체인 것이다.

  대양진인은 기천인들에게 우선 민족의 얼을 지킨다는 높은 사명감과 책임의식으로 정신무장할 것을 요구하신다. 수련을 통해 무인으로서의 인격과 높은 경지의 공을 쌓은 다음, 마지막으로 지킴으로서의 삶을 살고나서 이름없이 사라져가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알고 실천하도록 가르치시는 것이다.

  정신무장과 뼈를 깎는 혹독한 수련, 그리고 지킴이로서 책임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대양진인의 가르침에 의해 기천인들의 뼈와 살 속에 녹아들고 유전자에까지 심어져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살아 숨쉬는 ‘대국가적 혈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가? 이러한 이유로 고조선, 고구려, 발해라는 국가는 망해도 그 혈맥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가서는 필요한 때에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이러한 기천인의 모습은 과거 고구려의 조의선의(早衣仙人), 신라의 화랑제도, 백제 계백장군의 무사정신, 발해인의 용맹함(발해인은 용맹하기 이를 데 없어서 남자 셋이 모이면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고 한다)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서 산중비전(山中秘傳)의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전수된 것이다.

  기천문의 세상에 알려진 것은 대양진인의 하산에 의해서다. 대양진인은 원혜상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고, 원혜상인은 또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원혜상인 이전의 역사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 대양진인께서는 자주 할아버지(원혜상인)께 들은 이야기를 회고하는 가운데 독립군 이야기가 적지 않았다. 이 이야기들은 적어도 할아버지(원혜상인) 때이거나 그 이전일 가능성이 있다.